내년에 외고 입학을 원한다는 권양은 “부모님이 힘드신데 비싼 학원 다니겠다고 떼를 쓸 수도 없고… 집에서 그냥 예전에 학원 다닐 때 배웠던 내용을 다시 보거나 교육방송 수능 강의를 들으며 공부한다”면서 “하지만 학원 다니는 애들을 따라잡을 수나 있을지, 혼자 어떻게 제대로 공부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 위클리조선

  사교육의 폐해가 너무나도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위 링크는 주입식 교육, 입시위주의 교육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사회 전반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권양은 말한다. "혼자 어떻게 제대로 공부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학원위주 교육은 이런 문제점을 낳는다. 물론 월 100만 원이 넘게 들어가는 사교육비도 그렇지만, 더 큰 문제는 학생 스스로 공부할 힘을 잃어버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경제 침체 속에,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고자 하는 욕구는 뜨거우나 어쩔 수 없이 집에서 홀로 공부 시키게 하는 부모가 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이게, "정상화"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은 홀로 공부하는 게 정상이다. 학원에 안 가면 뒤쳐지는 듯한 불안감을 느낀다는 그 현상 자체가 비정상이다. 부자 엄마들과 대학 중시 풍조가 만들어낸 비정상적 분위기이고, 반드시 사라져야 하는 모습이었다는 말이다.

  내 경우, 학교에 다니는 동안 단 한 번도 학교 공부를 위한 학원에 다닌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내가 한 번도 매일 학원에서 몇 시간씩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부러워한 적이 없고, 그들에 비해 뒤쳐진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으며, 전교에서도 상위권에 속했다. 오히려 매일 새벽 2시까지 학원에 다니고, 숙제에 치여 사는 그들을 비웃었다. 지금에 와서야 내가 자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신 부모님께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혼자 공부하는 게 무섭다고 말한다. 수학, 과학의 수치상 성적은 상당히 높으나 창의력과 호기심, 흥미가 타국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한국 학생들의 현상에 대해 그 이유를 설명해주는 부분이다. 스스로 공부하는 능력을 잃고,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고 지식을 돈주고 받아먹는 일에 길들여졌다는 뜻이다. 비참하다. 창의성과 내신점수를 맞바꾸는 악마의 거래를 한 것이다. 학교 성적과 수능 성적은 학벌과 인맥을 보장한다. 하지만 그게 인간의 능력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보다 많은 창의력과 참신함이 요구되는 이 시대에, 앵무새처럼 주워들은 지식만을 되풀이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쓸모가 없다.

  이건 교양과 인성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학원에선 소설을 분석하는 것을 가르치지만, 그 자체를 느끼는 것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대학에서 요구하는 글을 쓰는 법을 가르치지만 학생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자유로이 글로 표현하는 것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그딴 게 왜 필요하냐고? 사람으로 태어나서 빵만 먹고 살 텐가?

  그렇다면 여기서 드는 궁금증. 다들 학원에 목을 매는 이 상황에서, 과연 사교육은, 정말로 부은 돈만큼의 성과를 내게 해주는가? 이 업계에서 일했던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정일원 씨의 말에 따르면, 학원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 이 어려운 과제와 진도를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이 느끼게 만든다는 것이다. 남들 다 한다는 선행학습, 우리 애만 안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라는 생각이 절로 들 수밖에 없다. 무서운 상술이다. 발렌타인 데이나 빼빼로 데이 같은 건 다 업체들의 상술이니 속아넘어가지 말라고 가르치는 부모들 그 자신이 또 다른 상술에 속아넘어가고 있다.

  학원은 사실 필요 없는 존재는 아니다. 혼자 공부할 능력이 전혀 없거나, 학교에서 요구하는 것보다 높은 수준의 공부, 이를테면 경시대회 준비 등을 하고 싶다던가, 특정 과목의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거나,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것(피아노, 기타 등)을 배우고자 한다면 학원은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무의미하게 모든 공부를 학원에 의존하고 목매어 산다면 그건 장기적으로 볼 때 학생으로 하여금 더욱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할 수 있다.

  기업은행 광고던가. 어떤 여자아이가 나와선, 집이 어려워서 부모님이 학원에 보내주지 못하게 되셨다고,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왜 부모는 미안해야 하는가. 남들 다 보내주는 학원, 자신들만 못 보내주는 것 같아서? 아니, 오히려 아이가 부모에게 감사해야 한다. 자신에게, 지식을 주입받기보다는 스스로 재해석해서 받아들일 수 있게끔 기회를 줬으니 말이다. 한 달쯤 후, 자식이 받아오는 성적표를 보고 부모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어, 학원 안 보내도 상관없잖아?"

  이명박 정부는 사교육비를 반으로 절감한다는 걸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현실은 사교육비 절감은 커녕 살림살이만 어려워지고 특목고와 자사고가 우후죽순 생겨나며, 고교등급제가 시행되고, 국제중이 나타나고,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되었고, 일제고사가 시행되었다. 그에게 이미 사교육비 절감은 안중에 없다. 어쩌면 그는 사교육비 절감이라는 정책을, 국민의 살림살이를 어렵게 하여, 자식의 교육비로 쓸 돈조차 없게 만드는 것으로 실현해나가려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나저러나 죽어나는 건 국민이지만.
 
  사교육의 대안은 얼마든지 있다. 학생들은 누구나 혼자 공부할 능력을 갖추고 있고, 혼자 공부하기 위해 필요한 자습서, 교재, 인터넷 강의는 넘쳐난다. 사실 애초에 사교육이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고 올바른 길인 것 같지만, 적어도 4년 안에 그렇게 되는 것은 무리인 것 같으니 현명한 사람들은 사교육에 끌려다니지 않고 자식을 교육시킬 방법을 생각해두는 편이 낫다.

  현명함은 남들을 따라가는 데서 오는 게 아니다. 뭐가 진정 필요한 것이고 뭐가 불필요한 것인지, 이게 과연 내 자녀들을 위한 길인지 생각해보는 데서 온다. 대체 언제까지 자식들을 그런 무의미하고, 또한 값비싼 지식의 일방적 주입 속으로 몰아넣을 것인가. 이 사회는 언제까지 그런 분위기를 조장할 것인가.

Creative Commons License
Creative Commons Licen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