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이 또래의 모두가 그랬듯, 나도 초등학생 때 부모를 졸라 집에서 생일파티를 한 적이 있었다. 손수 초대장을 만들어서 - 그래봤자 종이쪽지였지만 - 내 반에 있던 거의 모든 남자애들을 초대했다. 아마 20명 정도의 남자들을 모두 초대했을 거다. 단 한 명 빼고.
초대받지 못한 단 한 명. 나는 그에게 딱히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었다. 아니, 관심을 가지려 하지도 않았다. 그는 당시 우리 또래 중에서 가장 살이 많고, 뚱뚱하고 언뜻 보면 멍청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런 애였다(실제로 그는 그리 똑똑하지는 않았다). 폭력이나 협박, 금전 갈취 같은 건 없었지만, 그는 우리 반의 왕따였고 외톨이었다. 그런 그를, 내가 생일파티에 초대하지 않는 것은 어떤 면에서 보나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자각하지 못했다. 내가 즐거운 얼굴로 웃으면서 애들에게 초대장을 나눠줄 때, 초대장을 받지 못한 녀석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내 손에 들린 초대장 다발을 응시했으리라는 사실을.
나름대로 생일이랍시고 차려진 생일상을 친구들과 재빨리 비우고, 선물을 풀어본 후, BB탄 총을 들고 밖으로 우르르 놀러 나갔다. 그리고 우리는 놀이터를 전쟁터 삼아서 재밌게 놀았다. 하지만 난 그날, 학원에 가는 길이었는지, 커다란 가방을 메고 우리를 바라보는 그 애를 발견하고선, 그를 못본 척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나는 이기적이었다. 딱히 남의 감정을 헤아리려고 노력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좀 더 나이를 먹고, 서로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어느 순간부터 편을 갈라 끼리끼리 노는 그 광경을 보고, 심지어 나와 가장 친하던 친구가, 어느 날부터인가 우리를 적대시하는 그룹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깨닫고, 여러 가지 충돌을 겪으면서 난 그 초대받지 못했던, 내가 초대하지 않았던 녀석의 기분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렇게나 외로웠겠구나, 이렇게나 답답했겠구나.
그 후로 난 모든 행동을 조심스럽게 하기 시작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이고, 내 손이 닿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절대로 소외감을 느끼게 해선 안 된다. 이게 나의 신조가 되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신조에는 다수의 예외가 포함되었지만, 어쨌든 지금도 난 그 신조를 지키려 무던한 노력을 하고 있다. 누구에게든, 소외감을 주지 말자. 뭐, 가끔은 나 자신이 소외감을 강하게 느낄 때도 있다만.
우리는 남을 너무 쉽게 배척하고, 또한 고립시키고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끔 만든다. 하지만 그 배척과 고립의 대상이 나 자신이라면? 자신이 당해서 싫다고 느낄만한 짓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는 격언이 있다. 내가 그 당시에 이 말만 알고 있었더라면, 어떤 누군가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픈 기억을 갖게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꼭 내가 아니더라도, 어느 누군가, 같이 놀던 그 누구 한 사람만이라도 소외된 이의 심정을 헤아릴 줄 알았다면 과연 나와 초대받지 못했던 그의 기억은 어떻게 변했을까?
그날의 생일파티 이후로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를 길에서 만나면 난 필시 그를 알아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창회든 어디에서든 그를 만나면 그때 당시를 떠올리며 미안했다고 한 마디만 해주고 싶다.
초대받지 못한 단 한 명. 나는 그에게 딱히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었다. 아니, 관심을 가지려 하지도 않았다. 그는 당시 우리 또래 중에서 가장 살이 많고, 뚱뚱하고 언뜻 보면 멍청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런 애였다(실제로 그는 그리 똑똑하지는 않았다). 폭력이나 협박, 금전 갈취 같은 건 없었지만, 그는 우리 반의 왕따였고 외톨이었다. 그런 그를, 내가 생일파티에 초대하지 않는 것은 어떤 면에서 보나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자각하지 못했다. 내가 즐거운 얼굴로 웃으면서 애들에게 초대장을 나눠줄 때, 초대장을 받지 못한 녀석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내 손에 들린 초대장 다발을 응시했으리라는 사실을.
나름대로 생일이랍시고 차려진 생일상을 친구들과 재빨리 비우고, 선물을 풀어본 후, BB탄 총을 들고 밖으로 우르르 놀러 나갔다. 그리고 우리는 놀이터를 전쟁터 삼아서 재밌게 놀았다. 하지만 난 그날, 학원에 가는 길이었는지, 커다란 가방을 메고 우리를 바라보는 그 애를 발견하고선, 그를 못본 척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나는 이기적이었다. 딱히 남의 감정을 헤아리려고 노력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좀 더 나이를 먹고, 서로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어느 순간부터 편을 갈라 끼리끼리 노는 그 광경을 보고, 심지어 나와 가장 친하던 친구가, 어느 날부터인가 우리를 적대시하는 그룹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깨닫고, 여러 가지 충돌을 겪으면서 난 그 초대받지 못했던, 내가 초대하지 않았던 녀석의 기분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렇게나 외로웠겠구나, 이렇게나 답답했겠구나.
그 후로 난 모든 행동을 조심스럽게 하기 시작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이고, 내 손이 닿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절대로 소외감을 느끼게 해선 안 된다. 이게 나의 신조가 되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신조에는 다수의 예외가 포함되었지만, 어쨌든 지금도 난 그 신조를 지키려 무던한 노력을 하고 있다. 누구에게든, 소외감을 주지 말자. 뭐, 가끔은 나 자신이 소외감을 강하게 느낄 때도 있다만.
우리는 남을 너무 쉽게 배척하고, 또한 고립시키고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끔 만든다. 하지만 그 배척과 고립의 대상이 나 자신이라면? 자신이 당해서 싫다고 느낄만한 짓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는 격언이 있다. 내가 그 당시에 이 말만 알고 있었더라면, 어떤 누군가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픈 기억을 갖게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꼭 내가 아니더라도, 어느 누군가, 같이 놀던 그 누구 한 사람만이라도 소외된 이의 심정을 헤아릴 줄 알았다면 과연 나와 초대받지 못했던 그의 기억은 어떻게 변했을까?
그날의 생일파티 이후로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를 길에서 만나면 난 필시 그를 알아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창회든 어디에서든 그를 만나면 그때 당시를 떠올리며 미안했다고 한 마디만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