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가 없으니까 그렇지."

2009/03/05 20:11
 
  "재미가 없으니까 그렇지."

  Laputian이 36.5℃ 블로그에 대해 제기한, "요즘엔 왜 날이 갈수록 RSS 구독자수가 줄어만 갈까?"라는 의문에 대한 막장로그 수장 Rin4의 대답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이 블로그는 재미없다. 아니, 재미없어졌다고 평가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한때는 이 블로그의 구독자수가 지금 수준을 훨씬 넘고, 댓글로 "재미있게 읽었다"라는 소리를 듣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게 아마도 2007년 여름. 지금 생각하면 "저질이다" 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그런 낯 뜨거운 표현들을 주체할 수 없이 써가면서, 그런 식으로 포스팅을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주제도 단순했다. 성인용 게임. 애니메이션. 또 뭐가 있더라. 여하간 그런, 상당히 가볍고 비교적 영양가도 없는 주제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지금에 와선 그와 관련된 모든 글을 비공개처리했다)

  회상하기 부끄러운 과거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게 이 블로그의 전성기였다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 글을 읽고 재미있다는 사람이 있었다. 내 기준으로 재미있는 글에는, 깊은 고찰이나 잡스러운 수식어는 필요없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자유"이고, 어떤 면에서 보면 "타락"이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나에 대한 일종의 자만심을 가졌다. 다른 블로그처럼 문체가 미려한 것도 아니고, 주제가 세련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이야기를 딱히 재미있게 풀어나갔던 것도 아니고. 그런데도 그 천박한 언어 때문인지(혹은 내 글에 가식이나 격식이 없다고 느꼈던 노릇일지도 모르겠다) 구독자수가 세 자릿수에 달하고, 방문자는 일일 3천 명이 넘어갔다. 그렇게 키운 블로그가 자랑이었다. 당시에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바뀌었다. 내 블로그가, 단순히 나의 배설창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고, 또한 이 블로그에 뭔가 영양가 있는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개선을 시작했다. 문체부터 바꿨다. 비속어를 비롯한, 모자이크 처리가 필요할 법한 단어들을 블로그에서는 자제하기 시작했다.

  한때는 딱딱하고 지루해져가는 이 블로그를 보면서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나 자유롭게 글을 싸지르던 공간이었는데, 내가 이젠 남들 눈치나 보면서 블로깅을 하게 된 건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게 혹시 가식과 위선으로 도배된 짓은 아닐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예전처럼 글을 쓰기엔 이미 너무 늦어 있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그 바로 몇 달전 내가 그렇게나 자만했던 포스트들을 읽어봤다. 저질스러웠다. 확실히 재미는 조금 있었다. 하지만 재미보다는 창피하다는 느낌이 강했다. 내가 당시에 상대했던 그 사람들은, 대체 어떤 수준을 가진 사람들이었길래 이딴 걸 보고 "재밌다"는 표현을 썼던 것일까. 자괴감도 들고, 허망하기도 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올블로그 2006, 2007년 탑 100에 선정될 수 있었던 것일까? 이 점은 최근에 와서야 궁금해졌다)

  이게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블로그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재미"에 대한 마지막 남은 기억이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깊이" 그리고 "진지함"은 "재미"와 공존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느낌은 지금도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재미가 없다고 해서 깊이 있는 글을 써왔느냐. 돌이켜보면 그것도 아니다. 과거에 썼던, 그리고 최근에 썼던 글들을 보면 하나같이 수박의 겉껍질을 핥는 듯한 그런 밍밍함을 나로 하여금 느끼게 하는 글들뿐이다. 결국 이도저도 안 됐다는 소리다.

  보다 높은 질을 지향하기는 했으나,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이 블로그는 실패다. 과거엔 그나마 "싸구려 재미"라도 제공했지만, 지금은 그것도 아니니 별 수 있나. 


  참 재미있는 사실. 내 주변에는, 그리고 이 블로고스피어에는 깊이가 있으면서도 재미있는 블로그가 넘쳐난다. 내가 오랜 시간 구독해오고 있는 데굴대굴 님이나(가끔 나에게 큰 상처를 주는 글들도 있다), 그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RSS 리더에 추가한지는 꽤 된 Ikarus 님, 간혹 무거운 주제를 다루게 되더라도 마치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듯이 글을 풀어나가시는 D-S 님 등등(글을 보면서 웃는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다만 읽는자로 하여금 엄청나게 흥미를 갖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특히 최근에는 "재미"와 "깊이"의 공존에 대해 롤 모델로 삼고 싶은 블로거를 발견했는데, 그건 Capcold 님이다. 주제 그 자체는 딱딱하나 글은 쉽게 읽힌다.

  일종의 재능이라는 생각이 든다. 천부적인 재능. 마치 그림을 잘 그린다거나 영상 편집을 잘한다거나 머릿속으로 수백 자리의 암산을 해낸다던가 디자인을 아름답게 한다던가 하는 것과 같은, 그런 비슷한 종류의, 감히 따라하려 시도조차 할 수 없을 것 같은 재능. 지금의 나는 고민에 빠져 있다. 어떻게 하면 더 깊은 사고를 하면서, 보다 높은 질의 글을 생산하며 또한 구독자로 하여금 흥미를 느끼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과거의 그것과 같은, 미래에 보게 되면 쥐구멍에 숨어 들어가고 싶게끔 만드는 그런 싸구려 농담이 아니라, 흥미로우면서도 유익하다는 평가를 듣게 될 수 있을까.

   글쎄, 블로깅을 지금보다 '마음 편하게' 하면 될까? 이런 의문들에 대한 대답은, 앞으로도 몇 년간 블로깅을 하면서 천천히 찾아보도록 하겠다.


  p.s. 그건 그렇고, 처음으로 신청한 이글루스 렛츠리뷰에 당첨되었다. 리뷰 대상 품목은 허지웅 씨의 "대한민국 표류기." 사려고 벼르던 책인데, 잘 됐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대체 언제 읽고 언제 리뷰를..

  p.s. 이 글을 쓰고는, 한RSS 구독자 수를 거의 2주만에 다시 체크했는데, 무려 5명이 줄어 있다. 마치 사이드바의 거대한 구독아이콘이 "RSS 구독해지"를 부른 것만 같은 느낌이다. 다른 블로그에서는 다들 저렇게 하더만, 나는 안 된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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