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엔 수십억의 인간이 있고, 수십억의 두뇌가 있으며 수십억의 의견이 있다. 그 의견들은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으며, 자신과 다른 의견은 설득해보려 노력하고, 서로 다른 의견끼리 타협하여 보완점을 찾는 것이 중학교 도덕 교과서에나 나올법한 가장 적절하며 이상적이고 또한 바람직한 현상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현재 이 나라에선, 6.25 이후 냉전 때부터 지속되온 이데올로기의 첨예한 대립이 아직도 진행 중이다. 미네르바를 옹호하면 빨갱이고, 전의경을 옹호하면 배부르고 등따스한 놈이다. 철거민들을 옹호하면 입진보고, 철거민들을 비난하면 입보수가 된다. 서로를 이해하거나 이해시키려는 노력은 배제된 채 오로지 나 자신만의 생각을 크게 외쳐대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반대쪽 파로 몰아붙여 비난한다. 물론 나도 이 경우의 예외로 볼 수는 없다. 이명박의 정책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을 보고, 강경진압에 나선 경찰들을 추켜세우며 옹호하는 사람을 보고, 또한 촛불집회를 맹렬하게 비난하는 사람을 보고 '수꼴우파세력'이라 욕한다. 나에게 인신공격을 해대는 세력도 포함해서 말이다. 그야말로 6-70년대식 촌스러운 표현이 아닐 수 없지만, 현재 한국에서 이보다 더한 도발성 멘트는 없을 것이다. 이런 식의 비난이 아직도 통하는 사회라니. 그런데, 이런 것들이 싫다고 좌와 우의 사이에 서기도 힘든 노릇이다. 애매모호하고 줏대없는, 우유부단하고 어설픈 양비론자라는 비난을 듣기 십상이니 말이다.

  물론 나도 보수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는 했다. 하지만 계속 나빠져만 가는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고 여겨지는 이명박, 한나라, 뉴라이트에 대한 비난, 즉 우파들에 대한 비난 뿐이었다. 그 이상의 노력은 시간낭비라고 여겼다. 원래 비난은 하면 할수록 하기 쉬워지고, 그 강도가 높아져만 간다. 그리고 그만큼 상대방에서 나에게로 돌아오는 비난도 더욱 원색적으로 변해간다. 내가 가장 최근에 들었던 소리는 '차라리 북한으로 가라. 넌 아마 귀빈대접 받을 거다' 였다. (누구라도 이 말을 들으면 화가 나기보단 실소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언론은 이런 종류의 색깔 싸움을 부추긴다. 신문, 지상파 할 것 없이.

  내가 주로 다니는 올블로그는 일반적으로 좌파, 즉 진보 성향을 가진 블로거들이 주로 모여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실제로 나는 여기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활발하게 글을 쓰고, 많은 지지를 받고 있으며 또한 많은 빠들을 보유한 우파 블로그를 찾고자 한다면, 아고라도 좋지만, 그보다는 이글루스를 추천한다. 시수, 진명행 등의 보수파 블로거들은 지금까지도 구설수에 여러 번 올라왔으며, 많은 논란거리들 만들어왔다. 그리고 그 논란거리들이 일으키는 파문은 이글루스 전체에 그 영향을 주고 있다. 이 때문에 이글루스의 메인은 두 가지 색으로 양단되는 느낌을 준다. 때문에 올블이 '심심하다'라는 느낌을 주는 반면, 이글루스는 상당히 흥미진진하다. 동시에 올블은 비교적 평화롭다는 느낌을 주는 반면, 이글루스의 메인은 이오쟁패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항상 전쟁터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여기까지는 내 사상과 내가 생각했던 점. 그리고 이 아래부터는 이번 용산 참사로 인한 진보와 보수의 싸움을 보면서 느낀 점. 진보가 지적하는 보수의 문제점은 대체로 이렇다. "니들이 저 사람들의 아픔을 알아? 너희가 저 상황에 처한다면, 너희는 화염병을 안 던졌을 거라 100% 자신할 수 있어? 느그들은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연민도 없니?" 물론 여기엔 내 생각도 포함된다. 뭐, 일부는 이 주장을 온정주의라고 표현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와는 반대로, 보수가 지적하는 진보의 문제점은 이렇다. "감정에 치우쳐서 정작 누가 잘못한 건지는 분간도 못하고, 한심하긴. 법은 지키라고 만들었지, 돈 없는 놈들 화염병 던져서 시민 피해받는 거 방관하라고 만들었나?" 확실히 쿨하긴 하다. 그런데 좀 너무 차갑다.

  보수가 주장하는 것이 틀린 건 아니다. 나 자신도 그들이 지적하는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것 또한 인정한다. 지나친 분노, 연민, 증오, 이런 감정들에 휩싸여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어떤 과정을 통해 나온 증거들을 진보가 유리한 쪽으로 재해석하여 적용하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 쇠고기 파동 때를 그 예로 들어볼 수 있겠다. 이명박 탄핵 서명이나, 지나치게 과열됐던 인간광우병에 대한 우려 (이게 오버인지, 현실로 나타날지는 아직 모른다), 기타 등등. 어디선가 '이번 용산 사태에서 타 죽은 경찰 하나는 죽어도 싸다'라는 댓글을 봤는데 이건 감정에 치우쳐 사고가 마비된 (입)진보의 한 모습이 아닐까. 감정이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그렇다고 감정에 치우쳐 현실을 또다른 형식으로 왜곡하는 것도 상당히 나쁜 현상에 속한다. 감정에 치우쳐서 맹목적으로 그들을 옹호하기만 했을 경우, 정작 중요한, 이 사건을 일으키게 된 사회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은 내놓지 못한 채 정부와 기득권들에 대한 소모적인 비난에서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비난은 사회개혁을 바라는 자들이나, 실제로 피해를 입고 있는 자들, 누구에게도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일시적으로 언론과 여론의 관심을 끌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이런 경우가 꽤나 많아서 딱히 링크를 걸고 말고 할 것도 없겠다 싶다. 뭐.. 당장 이 블로그부터 봐도 되고.)
 
  그렇다면 (입)보수들의 경우는 어떨까. 그들은 감정이 배제된 상태에서, 냉철하고 정확한 사고를 하며 사태를 진단하고 시기적절한 비판을 하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대부분이 그렇지 못하다. 나름대로 쿨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 같긴 한데, 잘 뜯어보면 그 자신들도 결국 감정에 이끌려 글을 쓰고 있음을 보게 된다. '연민'과는 다른, '진보에 대한 배척'이라는 감정 말이다. 이글루스 진명행의 글은, 진보보다 더 심한 '감정 폭발'을 보여준다. 차갑고 딱딱한, 회색빛의 문체로 가리고 있긴 하지만 그 뒤에는 감정이 흘러 넘친다. 하지만 그다지 긍정적인 감정 이입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따뜻한 감정이 아니라, 이 도시처럼 차가운 감정이다. 이글루스에서 꽤 이름이 알려져 있다는 다른 보수 성향의 블로그도 마찬가지다. 비난의 색과 강도는 더 강하면 강했지, 다른 좌파 블로거보다 약하지는 않다. 냉철하다. 또한 냉정하다. 그 때문에 사태를 객관적으로 보고자 하는 그들 나름의 시선에도 왜곡이 생기게 된다. 이들 또한 감정에 휩쓸린다는 소리를 듣는 좌파 성향 블로거들과 마찬가지로, 사건의 본질과 증거들을 왜곡하는 것이다. 보수성향 블로거들의 글을 읽어보면 항상 처음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끄덕이고 나면, 이유를 알 수 없는 찝찝함이 몰려온다. 뭐랄까, 맞는 듯한 말만 구구절절하게 써놓은 종교 홍보책자를 읽고 나도 모르게 공감해버린 뒤 느끼는 그런 종류의 감정. 가장 기초적인 물리법칙도 무시하는, 말도 안 되는 과학상식을 갖다 붙여 그럴듯하게 포장해놓은 싸구려 판타지 소설을 읽은 후 느끼는 당혹스러움. 글은 설득력 있어 보이지만, 잘 살펴보면 어딘가엔 꼭 하나씩 사실 왜곡과 비약, 섣부른 일반화가 들어 있다. 그리고 그걸 다른 이들이 발견하는 순간 그 글은 설득력을 잃고 댓글 테러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물론 모든 보수파 블로그들이 이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 중 특히 영향력 강하고 두터운 팬층을 보유했다고 알려진 블로거들은 꼭 이런 성향을 보이더라.)

  이런 현실에서 우리가 필요로 여겨야 할 것은 무엇일까. 진한 감정을 지니되, 동시에 냉철하고 객관적인 자료들로 상황을 판단하는 진보. 그리고 차가운 비판을 하되, 인간에 대한 연민과 정이 살아 있는 보수(사실 지금 웹에 차고 넘치는 진보와 보수 블로거들이 전부 '진짜'냐 하는 문제는 계속해서 의문으로 남을 테지만). 일부 진보 블로그들이 지금처럼 감정에만 이끌려 토대와 기반, 근거를 상실한 비난을 계속해 나간다면 이에 대한 보수의 비판 역시 계속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일부 보수 블로그들이 지금처럼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무시하고 법 같은 딱딱한 요소에만 기대어 사태를 바라본다면 그 또한 올바른 해결책을 내놓을 수 없게될 뿐만 아니라, 반대파의 규모, 그리고 반발심까지도 키우게 된다. 악순환이다. 결국은 두 진영 다 탁상공론 수준에서 소모적인 논쟁을 마치게 될 것이다.

  사회 분열은 잘 따져보면, 이렇게 간단한 (하지만 해결은 결코 쉽지 않은) 문제에서 출발한다.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는 공존해야만 한다. 어느 한 세력의 힘이 너무 강해지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서로를 보완한다는 긍정적인 의미의 공존이 아닌, 뉴라이트와 아고라, 한나라와 민주당 같은 끊임없는 비난과 대립을 동반하는 공존에 그친다면 그것은 오히려 독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모두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와 깊은 감정의 골을 남기고 말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기엔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 냄새가 나는 객관론자가 되는 것. 어쩌면 이것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인터넷 논객들이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이 되어야 할는지도 모르겠다. 더욱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토론이 이뤄지는 사회를 위해서.



  p.s. 이 글은 이글루스 기준. 다른 곳에서 활동하는, 개념 있고 머리 좋은 우파 블로거를 아시는 분은 부디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p.s. 이 글과는 별개로 - 머릿속도 텅 비고, 예의도 없고, 감정도 메마른 색깔론자들, 댓글 테러를 즐기는 마조히스트들, 다른 의미의 댓글 테러를 즐기는 새디스트들, 한 시간에 천 원 받고 댓글 다는 알바, 이도 저도 아닌 찌질이들, 인신공격자들은 지구상에서 사라져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p.s. 티스토리 새 관리의 글쓰기 모드는, 글이 조금만 길어지면 굉장히 답답하다는 느낌을 준다. 내가 앞뒤에 무슨 말을 썼었는지 잘 보이지도 않고. 13.3인치 와이드 모니터는 이래서 슬프다.
  p.s. 사실 나 자신도 너무 극좌/극진보로 나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항상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스스로에 대한 컨트롤을 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걸 매번 느낀다. 하지만 어떡하겠나. 말도 안 되는 인신공격을 받을 때마다 열이 끓어오르는 것을.

  p.s. 참고할만한 글들 그리고 블로그.

 
자칭 보수와 윤리의 문제. / dcdc

 
극우 자유주의 논객들의 변태적 쾌락 / 다이몬
  용산철거에 대하여, 입보수&입진보가 되지 않기 위해 / blus
  RNarsis의 다락방 / 이글루스 블로그
 
진보의 언어로 진보를 까는 것의 한계 : 진명행의 언어 / leopord
 
眞明行의 근현대사 인물평론 / 이글루스 블로그
  時水의 앞마당 넥서스 / 이글루스 블로그

하지만, 아무리 똑똑한 보수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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