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팟 클래식, 사망.

2009/01/24 17:16

  뭐, 정확히 표현하자면 아주 '돌아가신' 것은 아니다. 다만 더 이상 회복불능하게 되어버렸을 뿐이다. 이걸 뇌사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코마 상태라고 해야 하나. 둘 다 같은 표현인가?

  지난 월요일 오후 9시 30분경, 나는 맥으로 애플의 키노트 팟캐스트를 받아 옮기고 있었다. 맥에 적응해보자고 하는 열의 하나만으로, 고통스러운 마우스 포인터를 억지로 움직여가며 팟캐스트를 받아 아이팟에 넣고자 했다. 그게 처음으로 내가 맥에서 아이팟으로 뭔가를 아이튠즈를 통해 넣은 경험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첫 경험에서 일이 터지고 말았다. 전송 중 프로그레스바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더니, iTunes가 '응답 없음' 상태로 들어가버린 것이다. 맥도 별 수 없군, 이라는 생각을 하며 프로그램을 강제종료했는데, 안 되잖아, 조, 종료가 안 돼, 종료할 수가 없어, 안 돼! 난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어. 이런 걸 전에 본 적이 있나? 안 돼, 그걸 누르지 마! 난 정말 모르겠어, 내가 정말 이걸 종료할 수 있을까? 아이고 맙소사, 우린 이제 죽었어. 이건 미친 짓이야, 난 이걸 종료해야겠어. 으아아-[각주:1]

  결국 파인더까지 뻗어버렸다. 맥을 껐다 켤까 하다가, 아무래도 찝찝해서 아이팟의 usb케이블을 뽑아주니 갑자기 아이튠즈는 종료되고 파인더는 정상으로 돌아온다. 다시 아이팟을 연결했는데, 이럴 수가..

  '본 아이팟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복원(포맷)이 필요합니다'

  우소, 아니, 거짓말이다. 10GB에 달하는 팟캐스트/음악과 15GB에 달하는, 웹에서 일일이 긁어모은 동영상 파일은 그렇다치고 80GB 하드 안에 들어 있던 나의 사랑스러운 호노카와 아오이 소라, 오오사와 유카(노모) 그리고 시노부사마와 유우쨩[각주:2]의 행방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전 컴퓨터의 백업 파일은? 절망스러웠다. 그야말로 하늘이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난 울지 않았다. 윈도우즈로 부팅해서 하드디스크 안을 들여다보았다. 다행히도 파일은 전부 살아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호노카와 아오이 소라부터 옮겼다. 다 옮기니 모두 합쳐서 54GB 정도. 원인은 아이팟의 인덱스 파일 손상이라 사료되어, 음악들을 다시금 아이튠즈로 옮기기로 했다. 당시엔 단순한 전송 오류라 생각하고, 맥에게 욕을 퍼부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윈도우즈에서 똑같은 전송오류가 발생했다. 음악을 30곡 정도 옮기다가 아이튠즈가 뻗어버린 것이다. 강제종료는 성공했지만, 아이팟에 액세스가 불가능하게 되어버렸다. 포맷. 혹시 시스템파일 문제일까 싶어 아이팟을 NTFS로도 바꿔보았다. 역시나 똑같은 오류. 포맷. 그렇게 복원하고 좌절하길 수 차례. 난 어쩌면 이게 내가 항상 우려하고 또 조심해오던 하드디스크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슬며시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예상은 적중했다. 다음은 HDDScan(Freeware)로 스캔한 아이팟 하드디스크. 전체 중 6%만 스캔했지만, 이미 배드섹터는 무시무시한 양이 검출되고 있었다.

배드섹터가 4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잘 나가다가 갑자기 액세스 불능 상태로 빠지는 시점이 온다.





  하지만 이미 리퍼 기간은 지난 상태. 현재는 답이 없는 이 아이팟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고 있는 상태이다. 하드디스크만 따로 사기엔 너무 타격이 크고, 그렇다고 클래식을 다시 사는 건 더 힘들고. 애초에 돈도 없고. 돈 쓸 곳은 늘어만 갈 뿐이고. 내게 남은 건 8GB짜리 아이팟 나노 2세대 Product RED밖에 없을 뿐이고. 54GB의 백업 파일은 갈 곳을 잃고 방황하고 있고, 데스크탑 하드 남은 용량은 2GB밖에 안 될 뿐이고. 이제 이걸 안락사 시켜야 하나, 어쩌나.

  사실 아이팟이 망가지자마자 한 생각은 '이 블로그에 애드센스를 걸자' 였지만, 이제는 누구에게도 내가 돈 때문에 블로깅을 한다는 인상을 주기 싫고, 또한 나 자신이 그런 느낌을 받는 게 싫으므로 관두기로 했다.. 만 통장 사정이 여의치 않을 경우 언제 다시 광고가 올라올지 모르니 'ADblock'이나 '센스부족' 같은 프로그램을 미리 깔아두라고 권장하고 싶다.

 
  기부 받습니다.





  1. 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t&no=6593&page=1 [본문으로]
  2. 각각 少女セクト 그리고 姉汁 [본문으로]
Creative Commons License
Creative Commons Licen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