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소위 찌라시 언론이라 일컬어지고 있는 조중동(조선, 동아, 중앙일보)에 대한, 광고주 압박을 비롯한 폐간 운동이 격해지고 있다. 검찰 측에선 명백한 불법행위라 주장하며 관련자들을 엄하게 처벌하겠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미국에서 광고주를 압박하는 등의 행위는 독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당연한 방법으로 여겨지고 있고, 그것이 맞다. 과거, 언론에 속박되고 세뇌되는 국민상을 뛰어넘어 지금 우리들은 소통의 힘으로 잘못된 언론을 잡아내고, 그들에게 국민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일련의 사태로 인해, 일반 시민들의 ‘신문 읽는 방법’에 대한 관심이 더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또한 이런 질문들도 생겨났을 것이다. 대체 어떻게 신문을 읽어야 하는 것인가? 어떻게 하면 신문사의 치졸하고 노골적인 의도를 파악하고, 그들에게 압력을 가할 수 있는 것인가? 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르게 신문을 읽는 방법인가? 그들 조중동은 어째서 그렇게 더러워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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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촛불집회가 처음으로 열린 지난 5월 2일, 이 책을 접했고 상당한 감동을 받았다. 제목은 ‘신문 읽기의 혁명.’ 과거 한겨레 신문의 문화부 차장과 여론매체부장 등의 자리에서 일했으며 각종 바른 언론상을 수상한 손석춘 씨가 지은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신문은 단순한 종이, 무생물이 아니라고 말한다. 신문은 살아있고, 그 안에는 신문사, 기자, 광고주, 데스크 등의 의도와 의사, 그리고 사상이 고루 담겨있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독자는 능동적으로 그 의도를 파악한 후 기사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그래야만이 진정 신문을 읽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신문은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조중동의 한 마디에 현혹되고, 속는다. 단편적인 시각을 갖게 되고, 문제제기 의식을 잃어버린다.

 

  ‘바보’독자가 되지 않기 위한 그 첫걸음은, 신문의 편집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나도 지금까진 눈치채지 못했지만, 신문의 편집은 알게 모르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 양 측의 의견들과 입장을 동시에 싣는다 해도, 신문사의 성향과 의도에 따라 그 둘 중 하나를 부각시키거나 혹은 묻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최근의 조중동 꼴을 보면 양 측 의견 고려는커녕 한쪽만 무작정 밀어준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에 쓴 글이 있다) 또한, 표제의 중요성도 강조하고 있다. 표제는 기사의 전체적인 인상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때문에 신문사에는 표제만을 담당하는 업무부서(편집부)가 따로 있다고 한다.

 

  편집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또 하나는 바로 흔히 데스크라 불리는 취재부장들이다. 기자가 쓴 글은 곧바로 기사화되지 않고 각 분야 편집부장의 손을 거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취재부장의 개인적 성향이나 의도가 다수 포함되곤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취재부장 너머에는 아까 말한 ‘편집’을 담당하는 편집기자가 있고, 그 다음엔 또 편집부장이 있다. 그리고 그 다음엔 또 편집국장이 존재한다. 이런 구조 때문에 아무리 기자가 중립적인 시각으로 기사를 잘 썼다고 해도, 그게 실제 발행되는 신문에 100% 반영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지금은 현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에서 원장으로 근무하고 있고, 전엔 한겨레에서 근무했으므로, 그로 인한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이 책의 전문성과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 한 신문을 예로 들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한겨레신문 등 여러 신문을 실제로 놓고 대조하면서 각 신문사에 어떤 성향이 있는지, 어떤 의도로 이런 기사가 나올 수 있었는지를 알려준다. (이 이상 이 블로그와 글에서 언급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냥 책을 사서 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에선 과거 정치권력의 손에서 놀아났던 신문들의 부끄러운 과거로 낱낱이 까발리고 있다. 과거 전두환 정권은 언론 탄압과 통제를 위해 홍보조정실이라는 부서를 따로 신설하고, 매일 신문사에 ‘보도지침’을 보낸 사실이 있다. 이 보도지침에는, 어떤 기사를 쓸 수 있고 없다 정도를 지적하는 수준을 넘어선 보도 방향과 내용 및 형식까지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있다고 한다. 또한,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을 찬양하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는 사실은 이미 우리 블로거들 모두가 알고 있지 않나 싶다. 동아일보는 전두환을 ‘정직하고 성실하며 평범 속에서 비범을 실천하는 인물’이라고 평한 기사를 실었던 바 있다. 당시 군부독재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신문사의 선택이었다고 백 보 양보해서 이해를 해준다 하더라도, 이런 신문사의 행태는 당시 국민들의 실망과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자신들의 목숨과 기자 생활을 위해 국민을 배신한 것이다. (지금은 보도지침같은 것들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그게 정말일까? 어쨌든 국민들이 진실을 전부 알기는 힘든 세상이니까)

 

  신문은 정치권력 외에도, 대기업, 즉 광고주의 압력을 받는다. 이번 광고주 압박이 그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민들이 ‘찌라시 물러가라’ ‘조중동 폐간’을 외쳐도 꿈쩍 않던 그 거대한 보수 언론사들이, ‘조중동에 광고 실으면 너희 제품 안 산다’라는 국민들의 ‘협박’ 앞에서 무너졌다. 조선일보는 부랴부랴 자신들의 입장을 ‘변명’하는 기사를 싣고, 동아일보는 매일 광고주 압박에 대한 법적 대응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기사를 1면에 실었다. 대체 광고가 얼마나 중요한 것이길래?

 

  이 책은, 실은 언론사에는 편집국장보다 높은 지위와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는 계급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권력과 자본가, 즉 사주(社主)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이번에 한겨레를 높이 평가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한겨레를 보면, 대기업의 광고는 거의 없고 반 이상이 책 광고로 되어있다. 게다가, 일반 시민들이 광고를 실을 수 있는 공간도 따로 마련되어있다. 덕분에 한겨레에서 얻는 광고 수입은 다른 거대 신문사들에 비해 매우 적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대기업들과 사주에게서 오는 압박과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그들을 비판하는 기사도 거침없이 쓸 수 있다. 하지만 조중동의 상황은 다르다. 그들이 광고로부터 얻는 수입은 평균적으로 75%를 넘는다. 그들의 신문을 보면 그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는데, 여하간 이런 과도한 광고 수익은 광고 자리 확보를 위해 신문 지면을 쓸데없이 늘리는 행위가 되고, 광고주 손에서 굽신대면서 놀아나는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 광고주는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보다 효과적으로 언론을 통제하고, 자기 수중에 두고 있다.

 

  적고 싶은 말은 많지만, 더 길게 써봤자 몇 명 안 읽어줄 것이라는 것, 잘 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지금부터라도 신문을 읽는 연습, 훈련을 하고 신문에 대한 바른 판단과 주권 행사를 하지 못하면 언제까지고 국민은 조중동과 조중동의 뒤에 서있는 정부, 대기업의 손아귀에서 농락당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난, 지금의 광고주 압박 운동을 찬성하고, 조중동 폐간 운동을 지지한다. 진실된, 그리고 진정한 언론사를 만드는 일은 국민, 즉 독자의 손에 달려있다.

 


  p.s. 더 궁금한 점이 있거나 흥미로운 점이 생겼다면 이 책을 구해서 읽어보기 바란다.
  p.s.2 이 책 자체의 반 조중동 성향은 그렇게 강하지 않다.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에서 그들의 문제점만 꼬집어 바라봤다고 해도 문제없을 듯. 다만 내 글은 감정이 다소 격하게 함유되었다는 느낌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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