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트위터란 어때야 한다” “블로그란 어때야 한다”는 식의 글들이 굉장히 싫다. 그럼에도 이런 재미없고 감동도 없는 글을 쓰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부분, 트위터와 블로그는 어떤 존재인가,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해 우리가 한 번쯤 더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트위터는 소통을 기반으로 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이다. 난 적어도 트위터상에서는 일방적인 발언이나 일방적인 추종이 아닌, 서로 대화를 나누는 방식의 상호작용이 이뤄져야만 한다고 본다. 나는 웬만한 “스타 트위터리안”들의 계정은 follow하지 않는다. 내가 그 사람들의 말을 듣기만 하는 위치에 놓여야 하는 게 싫기 때문이다. 간혹 메시지를 날려봤자 벽에다 대고 이야기하는 느낌만 들고. 김연아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내도 어차피 답변은 오지 않을 테고, 김형오 국회의장에게는 아무리 비난을 퍼부어도 반박의 답글 한 마디를 못 들을 수 없었다. 기성매체, 즉 TV와 라디오, 신문에서나 나타나는 이런 일방적 정보전달은 인터넷 사회에서 별 의미가 없다. 적극적인 쌍방향 소통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는) 트위터에서 이런 현상들이 나타난다는 건 상당히 안타까운 일이다.
본말이 전도됐다는 느낌이다. 트위터의 중심엔 기존 매체에서 숱하게 접해왔던,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만큼 아는 유명인들이 아닌 일반인이 있어야 한다. 소통은 서로가 동등한 위치에 놓여야 의미가 있는 법이다. 기존 매체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그런데 그런 일방적인 추종 구도를 깨뜨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던 SNS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니, 답답하지 않을 수 있을까. 트위터를 쓰는 건 개개인 나름이고, 특정인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새로운 정보를 공급받는 창구로써 쓰고자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서야 그냥 리더기에 RSS Feed 주소를 등록해놓고 최신 글을 받아보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유명인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주체적으로 ‘자신’을 표현하지 못한다면 사실상 SNS는 의미가 없다. 또한 유명인들을 트위터의 중심에 놓고자 하는 분위기도 사라져야 한다.
트위터에서 “숫자”는 여러 의미를 가진다. 트위터에서 “숫자”는 열성과 인기 등을 가늠해볼 수 있는 척도로써 쓰인다. 이건 다른 서비스에서도 비슷한 형태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특히 싸이월드의 “투데이”나 “일촌수”) 트위터의 경우 이 숫자들의 의미가 좀 더 재미있는, 그리고 복잡한 형태로 세분화된다. 그리고 이를 이용한 서비스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최근 한국에 생긴 “코리안 트위터즈”라는 게 그 한 예다. 블로거 민노씨는 이 서비스를 두고 “줄세우기”라며 비판한 바 있다. 블로거 egoing은 한 걸음 나아가서, 이 숫자들이 계급성을 띠게 된다고 말했다. (1) (2) (3) 나는 이런 입장에 동의한다. 다시금 말하지만 소통은 서로가 동등한 위치에 놓여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서열화는 그런 동등한 관계설정을 어렵게 할뿐더러, “소통의 질”보다는 “양”을 먼저 따지는 문화마저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다. 이 서비스를 살펴보면, 사람들의 “순위”를 매기는 기준은 오직 follower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평가대상은 모두 부정된다. 게다가 소통의 부익부빈익빈을 초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실 코리안 트위터즈 상위에 표시되는 사람들은 우리가 이미 웬만큼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Follower의 수가 그것을 증명한다. 바꿔 말하면, 이렇게 굳이 따로 서비스를 만들어가면서 더 노출시켜줄 필요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라는 소리다. 대체 이 서비스가 원하는 게 뭔가.
시사in 그리고 독설닷컴의 고재열 기자. (@dogsul) 처음 트위터를 시작할 때 일정시간 안에 follower 1000명 채우기 내기를 하며 많은 이들의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고재열 기자는 당시 “일단 소통의 장을 넓혀놓는 게 급선무였다”는 식으로 이를 피해가긴 했지만, 최근 또 한 번 follower 수를 이용한 내기를 벌였다. 내가 제목에서 말한 “숫자놀음”은 바로 이걸 두고 한 말이다. 이건 그냥 숫자놀음이다. 여기에서는 follower에 대한 어떤 배려심이나 감사, 존중도 찾아볼 수가 없다. Follower는 그냥 숫자가 아니다. 어떤 한 사람이 당신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소리고, 당신과의 소통을 원한다는 의미다. 당신의 말을 들을 준비를 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렇게 소중하고 의미 있는 개개인의 following이 단순히 유희 혹은 과시를 위한 follower 숫자 중 하나로 여겨지게 되는 순간, 소셜 네트워크가 지닌 “소통”이라는 가치는 사망선고를 받는다. 적어도 연예인들은 자신의 팬 숫자에 감사함이라도 갖는다지만, 고재열의 경우는 뭔가? 나는 이런 취급을 받는 것이 싫고 서글프다. 또, 나는 서로의 following이 그보다는 훨씬 귀한 대접을 받았으면 한다. 그리고 서로에게 그 “귀한 대접”을 요구했으면 좋겠다. 트위터에 중심에 인간이 아닌 숫자가 놓이게 되는 건 잘못된 것이다. 모순이다. 목적 전치이자, 인간 소외다.
통장 잔고와 외제차 보유수가 권력이 되는 이 사회에서, 트위터 안에서까지 이렇게 지극히 무의미하고 지극히 세속적인 일들이 일어나야 하는가? 나 또한 이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한 인간으로서, 이 잔인한 인간소외와 서열화를 피해갈 수 있는 성역은 없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두서없이 트위터 등지에 휘갈겼던 말들을 정리한 글. 그런데 정리해도 여전히 두서 없다.
*본문 중 존칭 생략에 대해서는 양해를.. :)
기본적으로 트위터는 소통을 기반으로 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이다. 난 적어도 트위터상에서는 일방적인 발언이나 일방적인 추종이 아닌, 서로 대화를 나누는 방식의 상호작용이 이뤄져야만 한다고 본다. 나는 웬만한 “스타 트위터리안”들의 계정은 follow하지 않는다. 내가 그 사람들의 말을 듣기만 하는 위치에 놓여야 하는 게 싫기 때문이다. 간혹 메시지를 날려봤자 벽에다 대고 이야기하는 느낌만 들고. 김연아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내도 어차피 답변은 오지 않을 테고, 김형오 국회의장에게는 아무리 비난을 퍼부어도 반박의 답글 한 마디를 못 들을 수 없었다. 기성매체, 즉 TV와 라디오, 신문에서나 나타나는 이런 일방적 정보전달은 인터넷 사회에서 별 의미가 없다. 적극적인 쌍방향 소통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는) 트위터에서 이런 현상들이 나타난다는 건 상당히 안타까운 일이다.
본말이 전도됐다는 느낌이다. 트위터의 중심엔 기존 매체에서 숱하게 접해왔던,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만큼 아는 유명인들이 아닌 일반인이 있어야 한다. 소통은 서로가 동등한 위치에 놓여야 의미가 있는 법이다. 기존 매체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그런데 그런 일방적인 추종 구도를 깨뜨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던 SNS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니, 답답하지 않을 수 있을까. 트위터를 쓰는 건 개개인 나름이고, 특정인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새로운 정보를 공급받는 창구로써 쓰고자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서야 그냥 리더기에 RSS Feed 주소를 등록해놓고 최신 글을 받아보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유명인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주체적으로 ‘자신’을 표현하지 못한다면 사실상 SNS는 의미가 없다. 또한 유명인들을 트위터의 중심에 놓고자 하는 분위기도 사라져야 한다.
트위터에서 “숫자”는 여러 의미를 가진다. 트위터에서 “숫자”는 열성과 인기 등을 가늠해볼 수 있는 척도로써 쓰인다. 이건 다른 서비스에서도 비슷한 형태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특히 싸이월드의 “투데이”나 “일촌수”) 트위터의 경우 이 숫자들의 의미가 좀 더 재미있는, 그리고 복잡한 형태로 세분화된다. 그리고 이를 이용한 서비스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최근 한국에 생긴 “코리안 트위터즈”라는 게 그 한 예다. 블로거 민노씨는 이 서비스를 두고 “줄세우기”라며 비판한 바 있다. 블로거 egoing은 한 걸음 나아가서, 이 숫자들이 계급성을 띠게 된다고 말했다. (1) (2) (3) 나는 이런 입장에 동의한다. 다시금 말하지만 소통은 서로가 동등한 위치에 놓여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서열화는 그런 동등한 관계설정을 어렵게 할뿐더러, “소통의 질”보다는 “양”을 먼저 따지는 문화마저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다. 이 서비스를 살펴보면, 사람들의 “순위”를 매기는 기준은 오직 follower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평가대상은 모두 부정된다. 게다가 소통의 부익부빈익빈을 초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실 코리안 트위터즈 상위에 표시되는 사람들은 우리가 이미 웬만큼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Follower의 수가 그것을 증명한다. 바꿔 말하면, 이렇게 굳이 따로 서비스를 만들어가면서 더 노출시켜줄 필요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라는 소리다. 대체 이 서비스가 원하는 게 뭔가.
시사in 그리고 독설닷컴의 고재열 기자. (@dogsul) 처음 트위터를 시작할 때 일정시간 안에 follower 1000명 채우기 내기를 하며 많은 이들의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고재열 기자는 당시 “일단 소통의 장을 넓혀놓는 게 급선무였다”는 식으로 이를 피해가긴 했지만, 최근 또 한 번 follower 수를 이용한 내기를 벌였다. 내가 제목에서 말한 “숫자놀음”은 바로 이걸 두고 한 말이다. 이건 그냥 숫자놀음이다. 여기에서는 follower에 대한 어떤 배려심이나 감사, 존중도 찾아볼 수가 없다. Follower는 그냥 숫자가 아니다. 어떤 한 사람이 당신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소리고, 당신과의 소통을 원한다는 의미다. 당신의 말을 들을 준비를 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렇게 소중하고 의미 있는 개개인의 following이 단순히 유희 혹은 과시를 위한 follower 숫자 중 하나로 여겨지게 되는 순간, 소셜 네트워크가 지닌 “소통”이라는 가치는 사망선고를 받는다. 적어도 연예인들은 자신의 팬 숫자에 감사함이라도 갖는다지만, 고재열의 경우는 뭔가? 나는 이런 취급을 받는 것이 싫고 서글프다. 또, 나는 서로의 following이 그보다는 훨씬 귀한 대접을 받았으면 한다. 그리고 서로에게 그 “귀한 대접”을 요구했으면 좋겠다. 트위터에 중심에 인간이 아닌 숫자가 놓이게 되는 건 잘못된 것이다. 모순이다. 목적 전치이자, 인간 소외다.
통장 잔고와 외제차 보유수가 권력이 되는 이 사회에서, 트위터 안에서까지 이렇게 지극히 무의미하고 지극히 세속적인 일들이 일어나야 하는가? 나 또한 이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한 인간으로서, 이 잔인한 인간소외와 서열화를 피해갈 수 있는 성역은 없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두서없이 트위터 등지에 휘갈겼던 말들을 정리한 글. 그런데 정리해도 여전히 두서 없다.
*본문 중 존칭 생략에 대해서는 양해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