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시작하며 밝혀두건대, 나는 알렉스 정도의 키에 해당하는, 그러니까 "대한민국 평균 신장"을 가지고 있는 "루저(영문표기는 luser)"다. 173cm라는, 나름대로 참 적당한 키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키가 더 큰 사람과 비교당하는 설움을 겪는 그런 대한민국 남성이란 말이다.

  이번 루저녀 사태에 대해, 기본적으로 socio님의 루저들과 새로운 중세라는 글에 동의한다. 지금 대한민국 웹에서 이뤄지고 있는 사태 -특히 퇴학 서명은 도가 너무 지나치다- 가 마녀사냥이라는 데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이번의 마녀사냥을 욕하고 싶은 마음은 나에겐 없다.

  이중잣대가 맞다. 남자의 외모를 논하기 전에, 대한민국의 곳곳에는 미녀와 추녀를 적나라하게 분류해 입맛에 맞춰 취사선택하고자 하는 남성들의 욕망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최근에 나온 "내눈에 콩깍지"가 그런 류가 아닐까 싶은데, 그런 면에서 보자면 마음이 얼굴보다 우선한다는 내용을 담은 류승범 주연의 "야수와 미녀"는 참 괜찮은 영화다) 나도 그런 선입견과 시각에서 사실상 자유롭지 못하고, 지금도 죄책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번 마녀사냥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는 않는다. 이번 사태가 대한민국의 키 작은 남성, 아니 '열등하다고 낙인찍힌 모든 자'들의 현주소, 울분과 억울함을 나타내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KBS2의 "30분 다큐"에서 키 작은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고, 모 시사 프로그램에서도 자녀들의 키를 크게 하기 위한 부모들의 눈물겨운(혹은 징그러운)노력이 조명되기도 했다. 얼굴이야 성형을 하면 추녀도 미녀가 된다지만, 키는 돈을 아무리 쏟아부어도 어느 정도 이상으로는 바꿀 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키'라는 요소가 재력, 얼굴과 더불어 중요한 사회요소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면서 키에 대한 중요성, 우월감은 강조되었고, 상대적으로 키 작은 사람들의 박탈감과 소외감, 열등감은 늘어났다. 그 홍대 다니는 여학생이 어떤 의도로 그런 발언을 했는가, 어떤 맥락으로 그 발언을 했는가 하는 것은 사실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미수다에 나온 여학생의 그 발언이 대한민국의 수많은 키 작은 사람들의 아픈 곳을 찔렀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은밀하게 숨겨져 왔던 그 치부는 인터넷의 익명성 아래 끔찍한 공격성으로 나타났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분노해야 한다. 내가 말하는 "우리"는 비단 키 작은 남자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외모지상주의로 가득한 지구 위에서 외모지상주의로 인해 상대적으로 "루저"의 처지에 놓이게 되는 모든 여자와 남자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앞서 이중잣대를 언급했는데, 이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남성과 여성의 문제로 이분해서 생각하면 안 된다. 이 문제엔 남성과 여성이 아니라, 대중과 "루저"가 있을 뿐이다. 이번 사태가 터져준 것은, 그 홍대녀에게는 미안한 일이긴 하지만, 사실 어찌 보면, 우리 모두에게 있어서는 잘된 일이다. 키가 180cm가 안 되면 루저, 외제차가 없으면 루저, SKY에 다니지 못하면 루저, 뚱뚱하면 루저, 못생기면 루저, 등등. 언젠가는, 누군가는 분명히 하게 되었을, 그리고 이미 했을 말들이다.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사지 못했을 뿐이지. 여성과 남성들의 분노가 터져나오고, 이게 이렇게 크게 공론화가 되고 나면 사람들은 냉정하게 이번 사태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갖게될 것이다. 내가 "키 작다"라는 말을 들으며 느꼈던 열등감을 저 여자는 "여드름이 많다"라는 말을 들으면서 느꼈겠구나. 내가 "못생겼다"라는 말을 들으며 느꼈던 아픔을 저 남자는 "경차 끌고다닌다"라는 말을 들으면서 느꼈겠구나. 남성들은 '꿀벅지'라는 말을 할 때 꿀벅지라는 말을 듣지 못하는 여성들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고, 여성들도 마찬가지로 '키 크다'라는 말을 할 때 키 크다는 말을 듣지 못하는 남성들을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바뀌어야 하지 않겠는가. 여성부는 왜 "꿀벅지"라는 표현에 분노했는가. 남성들은 왜 "루저"발언에 분노하는가.

  BBK사건 그리고 광우병사태 이후, 이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분노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지금 이 사태에 대한 분노는 (허지웅 같은 사람들이 말하듯) 결코 쓸데없거나 하찮은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그 분노의 타겟을 저 루저녀 개인이 아닌, 키 작고 못생긴 이를 루저라 평하는 이 사회로 향하게 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남성만이 분노해서도 안 되고, 여성만이 분노해서도 안 되고, 키가 크다고 분노하지 않아서도 안 된다는 점. 언젠가는 그 루저라는 딱지가 달린 화살이 자신을 향할 수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는 점. 분노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보다 나은 합의점을 찾아가야 한다는 점. 루저 사태를 보던 나의 소감이다.


  p.s. 또한 글을 쓰면서 느낀 건, 나도 참 멀었구나 하는 점이다. 정작 나도 지독한 외모지상주의가 담긴 발언을 무심코 뱉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내가 가장 먼저 극복하고 깨어야 할 것은 나 자신의 편견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긴다.
  p.s. 위의 "외모지상주의"라는 단어는 이 글에 한하여 "학력지상주의" "재력지상주의" 등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p.s. 어색했던 부분과 오타를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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