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 골이 아파서 잠깐(이라고 해도 벌써 2주가 넘어간다) 블로그에서 손을 놓고 있던 차에, 혼자 보기 아까운 위트 넘치고 재기 발랄한(?) 방명록이 올라왔기에 이렇게 소개한다. 이 자리를 빌어, 이전 글에 영감을 제공해주셨던 미국산 소고기 보따리 상회 대표님과 변듣보씨에 이어, 간만에 포스팅할 거리를 던져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한다.
포스팅보면서 어이가 없어 한마디 남깁니다...
고등학생이면 수능준비나 할것이지 정치에 관심을 가진것인가요?
이명박이 않좋단 소리를 듣지만 청와대에 앉아서 과연 국민 괴롭힐생각이나
하고있을까요? 이명박도 대통령입니다. 당신같은존재가 비판할수는 없습니다.
우선 대학다니시고 정치쪽 전공하셔서 제대로된 지식을 쌓고 오세요.
우르르 몰려가는 군중심리 네티즌이나 따라다니지 말구요.
이 방명록의 작성자인 ‘거참…..’이라는 자가 말하는 것은 아무래도 ‘비판의 자격’인 것 같아 한번 정리해보고자 한다. 첫째로 이 고결한 분께서 지적하시는 건 내 나이와 신분이다. 고등학생이면 수능 준비나 할 것이지. 근데 정작 내가 이 블로그에서 내 나이를 밝힌 적이 있던가? 대체 어떤 자신감으로 생판 본적 없는 남의 나이를 넘겨짚어 그것이 마치 사실인 양 자신의 논리전개에 이용해먹는지 정말이지 모를 일이다. 설령 내가 이팔청춘의 중학생이라고 해도 그것은 전혀 문제될 게 없다. 애초에 고려될 만한 부분이 아니다. 나이가 비판의 자격 중 하나에 포함된다면, 대체 뭘 기준으로 삼을 것인 가? 만 7세? 만 14세? 만 19세? 30세? 50세? 방명록을 남겨주신 당신은 아마도 성년을 그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묻겠다. 고등학교 3학년생과 대학교 새내기의 사고력이나 지적 수준에는 대체 어떤 차이가 존재하는가? 물론 성인이 되었다는 데에서 책임감을 느끼게 됐을 수도 있고, 대학교 들어가서 조금 심화된 지식을 쌓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이명박 정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는 것과는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고등학생이 “이명박 정부는 반서민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라고 하면 그건 거짓이고, 대학생이 “이명박 정부는 반서민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하면 그건 사실인가?
‘고등학생은 공부나 해라.’ 이 말은 무궁무진한 형태로 재활용될 수 있는데, 그 예는 이렇다. “대학생이면 취업준비나 해라” “사회인이면 승진할 궁리나 해라” “주부면 애들이나 잘 키워라” 좀 더 극단적인 형태로 나가보자면, “인간이면 밥이나 먹어라.” 이 중 과연 어떤 게 사회비판을 하기에 적합한 신분인지 난 참으로 궁금하다.
둘째로, 지적 수준의 판단기준에 대해서. 이 분께서는 날더러 “대학교 다니면서 정치 전공해서 제대로 된 지식을 쌓고 오라”고 하신다. 첫째로 궁금한 것은 정치학을 전공하면 사회를 비판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지 이며, 둘째로 궁금한 것은 그 놈의 ‘제대로 된 지식’이 대체 뭐냐 하는 것이다. 물론 난 “대학에서” “정치”를 전공하고 있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만약 내가 지금 정치를 전공하는 학생이거나, 정치학 학사학위를 받은 사람이었다면? 그럼 내가 했던 말들은 ‘제대로 된’ 말들로 갑자기 변하는 것인가? 저 당돌하신 분께선 내가 저 방명록에 답글로 “저 대학에서 정치 전공하고 있습니다만?” 이라고 대답하면 대체 어쩌시려고 저런 발언을 하신 것일까? 얼마 전에 똑똑한 변희재 씨께서 ‘사회적 발언을 하려면 뭐 사회학 분야의 책을 일주일에 몇 권 읽고 신문도 하루에 뭐 몇 시간 보고..’ 어쩌고 하는 개소리를 하셨더랬다. 나는 묻고 싶다. 이명박 대통령의 삽질을 지적하는데 왜 그런 변희재스러운 개고생을 해야 하냐고.
그러니까 변희재와 방명록 작성자는, 이 땅에서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비 전문가, 즉 ‘야매’는 다 사라져야 한다고 보시는 것 같다. 근데.. 이명박 각하를 포함하여, 이 땅에 군림하는 수많은 정치인들은 모두 ‘전문가’인가? 이명박 대통령의 이력을 살펴보면, 이명박을 ‘경영 전문가’라고는 할 수 있을지언정 ‘정치 전문가’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명박은 일주일에 사회과학도서를 2권씩 읽었다는 말도 없고, 정부 정책관련 보고서를 꾸준히 봐왔다는 이야기도 없으며, 무엇보다도 ‘정치 전공자’가 아니다. 세상에, 이런 비전문가를 대통령 자리에 앉혀놓은 멍청이들은 대체 누군가? 모르긴 몰라도 그 유권자들 중 하나는 ‘전문가’ 변희재씨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개인의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시민을 ‘비전문가’라고 비하하며 그 목소리의 진정성, 사실성마저 깎아 내리려는 저들의 노력이 실로 저질스럽고 한심하다. 비판하는 데에 어떤 자격이 필요하다고 믿는 그대들의 10원어치도 안 되는 싸구려 우월감과 오만함이 실로 불쌍하게 여겨진다. 그렇게 따지면 과거 서양과 동양에서 이뤄졌던 갖가지 민중 혁명은 불가능한 것이었으며, 지금 이 지구에 정부 비판할 수 있는 사람 몇 안 남는다. 에이씨, 그래 나도 한 번 해보자. 누구든지 나를 비판할 사람은 내가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졸업 때 남겼던 문집 속의 글들을 30번 이상 읽어 이에 대한 논문을 A4용지 기준 30매 이상 쓰고, 내가 이 블로그에 남겼던 글들을 최소한 일주일에 3번 이상 읽으며, 무슨 학문이든 간에 미국 아이비리그에서 딴 박사 학위 정도는 가져야 하고, 무엇보다 하루에 키보드 두드리며 익명으로 인터넷에서 찌질대는 시간이 30분 이하여야 한다. 이 자격을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날 깔 자격이 없다. 이제 기분이 좀 좋아졌는가, 그대랑 같은 수준에서 놀아주니까?
세 번째로, “우르르 몰려다니는 군중심리 네티즌”과 “이명박이 안 좋단 소리를 듣지만 청와대에 앉아서 과연 국민 괴롭힐 생각이나 하고 있을까요?” 라고 하는 부분에 대해. (두 번째 문장의 어색한 문장구조는 일단 무시하고) 일단 군중심리 네티즌이라는 식으로, 엄연한 이 나라의 국민인 네티즌과 시민을 ‘선동이나 당하는 우민’으로 취급하는 데에는 큰 분노를 느낀다. 우민론에 대해선 나중에 따로 끄적여볼까 생각 중이긴 하다. 두 번째 문장은.. 그래, 이명박은 국민 괴롭힐 생각은 안 하고 있을지 모른다. 단지 자신들만 잘 먹고 잘 살 생각을 열심히 하고 계시겠지.
마지막.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데, 난 ‘비판의 자격’은 따로 없다고 생각하지만 ‘비판의 적격자와 부적격자’는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목사를 비판하려면 해당 교회의 장로나 집사가 가장 적합하다. 교회와 목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으며, 기독교 교리에 대한 믿음도 강할 테니까. 별다른 이해관계 없이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목사를 비판할 테고 말이다. 반면 정치인이 정치인을 비판하는 건 별로 좋지 않다. 진정성 없는, 포퓰리즘과 견제를 위한 ‘쇼’의 하나로 비춰질 가능성이 클 테니까. 또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비판하는 것 자체는 그리 나쁜 일은 아니지만, 똥 묻은 쪽이 역공을 당해 처참히 무너질 가능성이 엄청나게 크다는 것, 그리고 애초에 별 진정성도, 설득력도 가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알아둬야 할 것이다.
평소 같았으면 조소를 한 번 해주고 끝났을 일이었는데, 최근 상당히 피곤하다 보니 이런 같잖은 일에조차 신경이 곤두선다.
p.s. 절 위하여 ‘똥’을 그냥 피하지 않고 구태여 건드려주신 ‘쭈렛’님과 ‘시나브로’님께 감사와 함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